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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강연 전  나눠 주었던 자료입니다.
글쓴이 : 고맙. 조회수: 2320 2003-11-13 04:55:29



데릭 저먼 회고전 특별강연 "시대착오적인 도착의 시대극 - 데릭 저먼의 르네상스 영화들"

                                                                                서동진(서울퀴어아카이브 대표)

1.

*데릭 저먼의 작품을 전유하는 일차적인 맥락은 그의 시대착오성이다. 물론 그는 기꺼이 시대착오적이고자 했으며
또한 시대에 지나치게 몰입했다. 이는 데릭 저먼을 "뉴 퀴어시네마"의 자장 안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그는 토드 헤인즈나 존 그레이슨, 말론릭스보다 과격하다.
이는 숨겨진 역사를 복원하고 자신의 거부된 흔적을 답파하려는 게이 역사학의 영화적 실천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뉴 퀴어 시네마의 다른 감독들에게는 이성애규범적인 역사(쓰기)로부터 추방당한 온전한 자신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회향할 과거조차 없다고 확언한다는 점에서 저먼은 그들과 구분된다.

*저먼의 퀴어 시대극들은 향수와 회한의 돌아보기를 통해 과거 자체를 (재)보존하려는 욕망에 복무하는 모든 영화적 실천을 비난한다.
케네스 브래너,  아이보리 형제 나아가 피터 그리너 웨이 등의 영국 영화는 이른바 유산영화(heritage film)를 만개시켰다.
유산영화는 "제 2의 엘리자베스 시대"를 주창했던 대처주의와 공명했고, 1985년 영국 영화산업계는
"영국영화의 해"를 선언하며 유산영화가 가져온 영국영화의 성장을 자축했다.
오랜 동안의 쇠퇴와 부진 속에 허덕이던 영국의 부흥을 위해 영국은 르네상스를 반복하고자 열망했다.
물론 그 르네상스는 저먼이 집요하게 자신의 영화 속에서 대적했던 엘리자베스 시대였다.

*그런 점에서 저먼의 르네상스 영화( <천사의 대화> ,<템페스트>,<희년>,<에드워드 II세> 등)는
모두 영국 영화의 동시대적 맥락에 조응한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이들이 강조하듯,
카라바지오와 푸생(Nicholas Poussain)의 대립과 자신의 영화적 실천이 놓여있는 형국을 대조한다.
그는 기원과 전통 그리고 사실적 재현의 명령에 복종했던
푸생의 계보(여기에는 단연 케네스 브래너와 피터 그리너웨이를 포함시켜야 것이다.)를
자신의 작업과 구분한다.
그는 카라바지오의 회화적 재현의 정치학을 또한 그의 영화적 재현의 정치학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의 담론을 통해 매개된 과거만이 있을 수 있음을 공언하고,
같은 시대의 민중의 삶을 신화와 성서의 회화적 재현의 대상으로 삼은 카라바지오의 전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푸생이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를 정의 하며 로마적 원리,
본래적으로 존재했던 미술의 규칙과 법이 유일한 예술의 소명이라고 믿으며, 카라바지오를 반역자와 파괴자로 비난 했을 때,
이는 또한 저먼에게 쏱아졌던 비난과 다르지 않다.
모두들 그가 역사를 파괴하고 오염시키며 날조한다고 중상하지 않았던가.

*카라바지오가 역사적 과거의 제시를 위해 동시대의 민중의 신체를 화면에 옮겨 놓듯이,
데릭 저먼 역시 과거라는 환영적인 공간에 파묻히지 못하도록 끈덕지게 개입한다.
<에드워드 II세>에서의 영국의 유명한 레즈비언,  게이 운동조직인 "아웃레이지(Outrage)" 운동가들의 시위,
애니 레녹스의 등장 등이나 <카라바지오>에서의 모터사이클,타자기,전자계산기 등의 사용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물론 우리는 아예 시간여행 자체를 모티브로 삼는 <희년>에의 기괴한 펑크적인 시대극이나
<천사의 대화>의 세익스피어의 소네트와 동조되어있는 프리즈 화면의 연속체는 숫제 그런 시대착오성을 전면화하고 있다 볼 수 있다.
이를 위한 그의 형식적 실천 역시 매우 명료하다. 상이한 역사적 시대에 속한 사물 혹은 소도구의 병치를 통한 시대착오적 미장센의
활용이나 역사의 담론적 구성을 영화적 실천자체에서 서술하는 그의 명민한 특기인 밀실공포적인 내부적 공간의 특권화
(우리는 이 점을 화면으로부터 외부를 어둠 속에 잠기게 함으로써 표면 위에 재현되는 대상 자체에 몰입하게 하는 카라바지오의 화법과 그의 인테리어 영화가 놀랍도록 대응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감독으로서의 저먼에게 있어 영화를 전유하는 주체의 문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
그 스스로 일종의 중세적 카니발인 가면극을 상연하는것으로 간주했던 <에드워드 II세>는 분명 자신이 속한 공동체,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 작업을 둘러싼 모든 의문에 한결같이 자신의 영화는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위한 영화 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저먼은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표상하는 언어를 박탈하고,자신에게 치욕과 박탈, 고통의 삶을 배당해준 역사에 대하여 언제나 적대적이다.
("나는 우리의 활기찬 현재를 거세했던 엘리자베스적인 과거를 깊이 혐오한다",<퀴어 에드워드 II세>).
로카르노 영화제 에서 <세바스찬>의 첫 상영중에 벌어진 소동, 그리고 그날 밤 펑크들의 시위와 폭력,
스위스 첫 게이운동조직의 출범을 회상하며, 저먼은 언제나 행복해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주체로서 퀴어의 존재를 압축하는 곳은 <대영제국의몰락>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스프링"의 난폭한 수음의 장면일 것이다.
카라바지오의 <육욕의 사랑 Profane Love> 이란 그림 위에 누워 그는 아랫도리를 부비며 수음을 하고,
그위로 그를 쳐다보며 촬영하는 저먼의 그림자가 떨어진다.(저먼은 이를 "cinematic fuck"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훗날 퀴어들이 침대에 누워 포터블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보면서 수음을 하기를 원했다.
(Long Live cinematic fuck!).

*저먼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특성은 또한 그가 직조하는 시각적 쾌락의 장치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형식들을 개주 하거나 재무대화한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저먼은 카라바지오가 영화적 빛을 발명했다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의어두운 실내는 곧 영화의 스튜디오 세트이다),
<천사의 대화>의 소네트, <에드워드 2세>의 가면극(the masque)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먼에게 르레상스기에 있어 중요한 미적 형식이자 그것을 주재한 집단은
연금술사, 신플라톤주의자(플라토닉 러브!) 점성술사였다.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연금술사 존 디( John Dee )는 바로 르네상스의 이단적 연금술사였다.
그리고 연금술적 이미지
(<천사의 대화> 에서의 수정공, 부채, 또한 <희년>의 존 디 , 그리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거울, <템페스트>의 그림 등)는
저먼에게 있어 자신의 영화적 실천의 은유였다.
저먼은 "빛과 물질의 화합 - 연금술적 결합이 영화이다" 이라고 주장한다.


2.


*"나는 신비의 영역은 동성애적 상황의 은유라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마법은 금지되어 있으며 위험하고 난해하며 신비스럽다.
나는 콕도의 영화, 케네스 앵거, 그리고 에이젠슈타인의 영화에서 마법을 본다.
아마 그것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금지의 영역이며 게이 상황에 관한 은유일 수 있다."(<Kicking the Pricks>).
저먼은 그럼으로써 퀴어 영화의 계보속에 자신을 기입해 넣는다.
장주네의 <사랑의 찬가>의 감옥, 장 콕토의 <오르페우스>의 회랑과 요술상자같은 방들,
<쾌락궁전의 창립>등에서 그 스스로 마법의 사도이고자 했던 케네스 앵거,
파졸리니의 <살로,소돔 120일> 의 격자창에 에워싸인 밀실, 그리고 자신의 <세바스찬>에 등장하는 숙영지 . 이 모두는 퀴어 공동체의 물질적 현존이며 그것의 영화 속 장소이다.
그러나 한가지 추가할 점, 그것은 암호와 은밀한 언어이다.
그 장소에서 우리는 공통의 언어로는 들을 수 없는 세계의 목소리를 포착해야 한다.
<희년>에서 엘리자베스가 토로하듯 "아름다운 꽃들의 은밀한 언어 "가 바로 그 언어이다.


*한편 연금술은 "기억의 기예(art)"이다. 퀴어 시대극은 결국 그런 연금술적 기억의 기예로부터 출발한다.
그 스스로 연금술과 르네상스기의 마법에 몰두하였던 저먼은 자신의 영화들이 곧 기억의 기예가 되기를 희구하였다.
<대영제국의 몰락>와 <천사의 대화>혹은 <여왕은 죽었다>같은 뮤직비디오를 참작하며
그를 장 뤽 - 고다르를 사사한 모더니즘으로 간주하고
나아가 영국의 "뉴 웨이브"(콜린 맥카베나 피터 울른 등)의 전통 속에 묶어버리는 비평적인 입장은 그런 점에서 빗나간 것이다.
영화적 재현의 환영성을 비판하기 위한 모더니즘적인 책략이라기보다는 저먼의 영화는 정서적 힘 자체를 겨냥하며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레오 버사니가 말하듯이 저먼은 파졸리니와 같이 영화로부터 힘을 회복시키고자 했다.
영화적 텍스트의 물질적 조성에 대한 꼼꼼한 반응을 시도하는 관객이 아니라
영화로부터 정동(affect)을 취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감각과 의식을 변형시키는 것이 영화여야한다
(알다시피 물직과 의식의 변형이야말로 연금술의 텔로스 아닌가)
그런 점에서 파졸리니의 시학의 영화는 곧 저먼의 연금술적 영화와 상통하는 것 아닐까하는 과감한 상상까지 한다.


*<천사의 대화>의 프리즈된 화면의 연속체
( 8mm 카메라로 빠른 속도로 촬영한 후 이를 다시 정상 속도로 영사하고
다시 이를 필터 촬영한 후 다시 35 mm로 블로우업하면서 생겨난 사진적인 혹은 수정공적인 이미지),
<대영제국의 몰락>의 홈 무비와 빈번한 이중인화 그리고 대조적인 몽타주,
<여왕은 죽었다>에서의 피카디리 광장의 에로스 상, 헤엄치는 금붕어, 우울한 소년 등의 이중인화 등은
모두 저먼에게 있어 "기억의 체계"이다.
저먼은 푸코의 말을 빌자면 "반기억(counter-memory)"를 실천하는 기억의 연금술을 발휘한다.
그것은 역사적 세부에 대한 고증과 발견,
그리고 그를 통한 역사 자체를 장악할수 있고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나아가 그로부터 역사와 현재의 거리를 확보할 수있는 이데올로기적 공간의 보장,
이 모두가 저먼이 위반해야 하는 것들이다.
"신은 과연 무엇을 말했는가"라는 물음을 거절하고,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대화에 착수하고 과거를 현재의 맥락과 해체시키고,
과거의 물질을 현재의 시간적대상 속에 합성하는 연금술.
그것은 저먼의 반기억의 실천을 위한 영화적 전망을 구성한다.
물론 연금술사들, 소도미(sodomy)와 마녀 라는 이름으로 박해를 받은 주변적인 주체들은 곧 르네상스 시대의 소수자들이었고,
또한 그것은 대처주의의 암운과 애국주의적 광기로 충만한 동시대의 소수자들인 퀴어의 환유이기도 하다.


*저먼은 <에드워드 II세>에서 추방지에서 돌아오는 가베스턴은 가면극의 휘황한 매력과 즐거움을 상기한다.
단 한번도 야외 장면을 포함하지 않은 <에드워드 II세>의 밀실공포적인 세트는 곧 가면극 자체를 상영한다.
물론 이 때의 가면극은 곧 근대적인 연극과 다르다.
그것은 재현과 청중사이의 관계가 전연 다르기 때문이다.
"아웃레이지"의 액티비스트들이 화면 속으로 들어오고 그들은 저먼의 시대착오적인 퀴어 시대극의 정치학을
가장 효과적으로 상징화 한다.
르네상스의 화려한 가면극은 관객이 극 속으로 끼어듦으로써 극 안에서 전개되던 갈등을 해소하는 카니발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가면극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연행(performance) 자체로부터 신화적인 진실을 현재의 진실과 포개어 놓는다. 그런 점에서 가면극은 저먼의 퀴어 시대극과 공명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먼의 영화들은 에이즈 시대의 퀴어 영화이다.
저먼은 커밍아웃한 퀴어 감독이다 또한 HIV감염자 였다.
그의 <가든>, <블루>와 같은 후기작들은 에이즈 위기 시대의 맥락과 분리시킬 수 없다.
그러나 또한 에이즈 위기는 그를 동시대의 뉴 퀴어시네마와의 관계를 설명하도록 해준다.
그의 퀴어 시대극은 에이젠슈타인과 장 콕토 그리고 퀴어 하위문화를 연결하는 존 그레이슨의 <소변기>와 대응하고,
장 주네와 B급 호러영화, 그리고 타블로이드 신문 속의 퀴어를 연결하는 토드 헤인즈의 <포이즌>과 대응한다. 또한 랭스턴 휴즈와 할렘 르네상스를 소환하는 아이작 줄리언의 <랭스턴을 찾아서>역시 그에 추가되어야 한다.
이 모두는 뉴 퀴어 시네마의 퀴어 시대극들이며 또한 가장 탁월한 작품들이다.
그들은 자신을 이성애자와 다르지 않은 정상적인 존재로 등록함으로써
자신을 표상하려던 게이 영화의 "정체성의 정치학"과 모두 단절하고자 하엿다.
그리고 저먼은 그러한 뉴 퀴어 시네마의 척후병이었다.



참고한 글들
Leo Bersani & Ulysse Dutoit, Caravaggio, London, BFI, 1999

Jim Ellis, "Queer Period - Derek Jarman's Renaissance", Outtakes -Essays on Queer Theory and Film, Ellis Hanson  ed., Duhram and London , Duke Univ Press, 1999

Derek Jarman, At Your Own Risk -A Saint's Testament, New York , The Overlook Press, 1993
Derek Jarman, Kicking the Pricks, London, Vintage, 1996
Derek Jarman, Queer Edward II, London, BFI, 1999
Tony Peake, Derek Jarman: a Biography, New York, Overlook Press, 2000
Justin Wyatt," Autobiography, Home Movies, and Derek Jarman's History Lesson", Between the Sheets, in the Streets: Queer,
Lesbian, Gay Documentary, Chris Holmlund and Cynthia Fuchs, ed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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